10월 21일 토요일 저녁 용평리조트안의 빌라콘도에서 즐거운 밤을 보냈다.
나의 형수님 古稀宴을 갖었다.
나의형수님은 70년전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심이라는 동네에서
동레 정씨 가문에 테어나셨다. 위로 오빠두분 ,아래로 남동생두분과 여동생 한분
6남매에서 맏딸로 테어나셨다.
완고하신 아버님,그리고 두분 오빠아래서 엄한 가정 교육을 받으신 분이다
22살 되는해
1958년 늦은 가을 나의 형님과 결혼하셨다. 인접군 경남거창군 위천면 남산동으로.
당시 媤家쪽은 시부모님,신랑 되는분은 위로 누님두분 출가하였고 아래로 남동생 둘[14살,11살] 여동생 [9살]하나였다.
신랑은 24세였다.대구교동시장에서 피복 가게를 하였다.
이듬해 이른봄에 대구로 시집이 이사를 나오게되어 가을 에 시집을 오게 되던 풍습이 있었어나
일찍 신행을 오게되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나온다니 덜떤기분은 잠시 였을것이다.
대구시 비산동 달동내 같은대 그당시 수도시설도 없어 200미터 가까이있는 두래박 공동우물 길러
먹고 물장사가 리어카에 실고 다니는 때였다,
당시 인접에 나의 삼종숙되는 집안이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던듯 하다.
이듬해는 대구 대봉동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여러해살았다.
집안에 감나무도 한그루있었고 물은 폼푸질해서 푸는 우물이였다 .
주변의 오몀으로 약간 냄새가 났다 ,
어느해겨울 교동시장에 큰불이났다,
크리스마스전으로 기억하는데 겨울 물건을 대목이라 꽤많이 드려놓았다.
그러니 많은 손해를 보았다,
그리고는 그장사를 접고 직조 재품공장운영,서문시장에서 잡화도매등 여러사업을
전전하다 1965년경인가 수표부도를 내고 말았다.
무일푼으로 강능을 무작정 올라가 여름철 경포해수욕장에서 일을 했단다.
대구의 가족들은 남의 셋방을 전전하며 어려운 살림을 했지
그러다 조금 자리가 잡힌 형님은 가족을 모두 강능으로 합수시켰다.
나의 조카들은 모두 강능에서 초 중고를 마치고 대학은 모두 서울로 유햑했다.
이놈들 공부시킨 이야기 기가 막힌다.
오늘의주인공 나의형수님 정 복순 여사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향학열은 아무도 따르지 못한다 .
그어려운 살림살이 강릉성남시장 바닥에서 노점부터시작해서 안해본 장사가 없다.
얼마나 손발이 닳도록 일을 했을까 주민등록 갱신때 손가락에 지문이 안나왔어니......
그리고 이놈들이 서울에 대학을 들어가 제대로 정식4년에 졸업한게아니다
7,8십년대 민주화 대모학생의 한 역활들 했다 .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그래서 모두 10년여 대학을 했다.
장녀[서울대졸]현재 서울 노동광장 ...노동자 의식 교육에 열중
사위[서울대] 역사작가...저서로[다시쓰는 한국사]외 다수
#위 두분은 낮은곳의 친구요 언덕이고 어두운곳의 빛이되시는 분들임을 알고 있읍니다.
큰아들 [중앙대,대학원 졸]현제 S회사
두째딸:서울대 3년 중퇴후 성심의대 졸업 내과의사.
사위 : 산부인과의사
차남:한양대 공대3년중퇴후 강능대 의대 치의대졸업 주문진애서 개업醫
삼녀: 이놈은 돌연 변이다. 고등학교때 연애를 해서 제일 먼저 시집갔다
그런대 이놈이 제알 효녀다. 신랑 원서방이 사업을 잘하고 효성이 지극한 사위다.
이렇게 2남3녀를 모두 훌륭이 키운덕분에 이제는 자녀들로부터 봉양만 받아도 될때가 되었다.
건강하셔야 되는데 형수님은 30여년 전 자궁암 수술로 그후유증과 날마다 고된 삶으로 하루도
편히쉬는날 없이 일을 하셨으니 지금은 얼마나 노쇠하신지 ....
지금도 자주 병원앨 다니신다.
두째딸이 의사가 된것도 어머니 병 고쳐드리겠다고 서울대 마다하고 중도에 의대를 갔다.
우리형수님은 자녀들에대한 子情도 유별나지만 시부모님에 봉양도 효성이
지극했음을 우리는 잘안다,
그리고 가족의 화목을 위한 형제자매간의 우의또한 대단하셨다.
맏형수는 부모 맞재비라고 한다 우리형수님은 시동생들한테나 동기간에 부모님보다 더
정을 주신분 이다 .
오늘 비로서 고마움을 피력하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빌어본다.
그래서 형수님은 사랑 받아야 할 사람임니다.
이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시고 오직 당신의 건강만 챙기시오.
내큰딸 박실이 가족이 큰 엄마를 위해"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를 축가로 부르고
둘째아들 치과의사가 "무조건"을 개작해서불렀다
어머니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겠다고..........
그리고 둘빼딸이 어머니의 약력소개와 고마움에대한 칠순 축사를 할땐 모두
숙연함에 눈시울 붉어젔다.
연탄 한장 ,쌀한톨을 매일 사들고 다니며 그것도 때로는 외상 하니
돌아오는 발걸음 어떠했던고
아이들 등록금 이집저집 돈꾸어로 다니는 마음
한번도 허리피고 고개들고 살았던가 사서 고생한다고 흉보는이 많았지
웃돌빼서 아랫돌 고이고 아랫돌 빼서 웃돌 막고........
성남동 시장 물국수 한줌 사와 물많이 붓고 끓인죽 건드기는 시부모
또건져 자식들 나는 국물만 먹고도 배부른 척 웃음을 잃지 않았던
.........
당신은 이제 사랑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런 성대한 자리 마련한
조카,질부들 ,질녀,그리고 姪壻 들 고맙게 생각합니다.모두들의 가정에 행복을빌고
형제자매간에 더욱 돈독한 동기간에 정 쌓아가며 살고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주길 바란다.
막내의재롱 귀엽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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