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외씨보선길 12구간 (강원영월김삿갓시인의길)을 가다.

낙동강사랑 2013. 7. 15. 18:46

2010년에 청송,영양,봉화,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 제12구간(김삿갓문학길)으로 정했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행적을 따라 자연을 벗하며 걷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길 속의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외씨버선길 열둘째길의 이름은 『 김삿갓문학길 』입니다.

난고 김삿갓문학관은 난고 김병연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난고 김병연의 발자취를 쫒아 일생을 바친 정암 박영국선생의 김삿갓 연구자료와 이응수가 지은 김립시집 외 구한말에서 현대까지 각종 서적, 간행물, 논문,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김삿갓시인의길을 가는 중에   이 베틀재를 넘게된다.

 

 

난고 김삿갓
선생은 안동김씨의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의 후예로 조는 선천부사 익순이고 부 안근과 모 함평이씨 사이의 이남이다.

 순조 7년 정묘(1807년) 3월 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출생하였고 휘(諱)는 병연 자는 성심 호는 난고(蘭皐)이다.

 

순조 12년 임신(1812)선생 육세때 조부 익순이 홍경래란에 관련되어 3월 9일 복주(覆誅)되자 연루(連累)를 피하여 황해도 곡산에서 숨어 자랐다. (익순은 고종 정유년에 신원(伸寃)되고 순종 무신에 복작(復爵)되다) 그후 익순에 대한 문죄는 본인에 국한하기로한 조정 결정이 알려져서 선생은 모친과 함께 곡산을 떠나 광주,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 삼옥에 정착하였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때 영월도호부 동헌 백일장에서 조부를 지탄한 죄책으로 번민끝에 궁벽(窮僻)한 산협(山峽)인 이곳 어둔으로 이주하였다. 선생은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삿갓을 쓰고  운수납자로 방랑길에 나섰으며 김삿갓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선생은 57세로 운명할 때까지 전국을 두루 유랑하였으며 인간사 모든 것을 시제로 락운성시(落韻成詩)하였다. 또한 선생의 과시는 후세 과거 지망자들의 교범으로 쓰여졌을 뿐더러 특히 평민들의 생활상을 시로 읊어 빛나는 서민문학을 남기었다

 

. 철종 14년 계해(1863) 3월 29일 전라도 동복에서 작고한 것을 3년후 둘째 아들 익균이 현재의 묘소로 이장하였다. 1982년 10월 17일 세상에서 잊혀졌던 선생의 묘소를 박영국은 김영배, 이상기등의 증언으로 이곳에서 찾아 내었다.
※ 자료 『김삿갓의 유산』중 시선 난고선생사적 기문 -영월군청-

 

 

 

 

 

 

 

 외씨보선길은 경북 ,울진,청송,영양,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간의 옛도보길을   복원하여  오늘날 전통문화체험과 역사를 공부하며 산책하는길이다.

....Km의 긴구간  산을 넘고 ,강을건너고 ,고개넘어며  굽이 굽이  험하고 때로는  맹수도 나오던 옛길 ......그때그시절 이길은 보부상들의  생필품을

나르던  물질문명의 소통의길이고  나뭇꾼이나 산나물채취하며 초근목피하던  생명의 길이기더했으며 선비들이 서울 로가는 길이기도 했단다.

이길을 가지않으면 안되었던 소중한  길이다. 마을과마을,고을과고을을  연결하며소통하던  교류의 길이며 소통의길이다.

 

지금은 길을 비교적 자연을 해치지않는범위안에서 그래도 더러는 정비가 되어있고 안전에 관심을 갖이고 행정관서에서 정비를 해놓았지만

아지고 손이 미치지못한곳이 많다. 위험하고  험난한 구간도많고  울창한 오솔길은 여름에  뱀이나 해충에도 조심해야 되겠더라.

하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때 그시절의  길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그래도 지금의 길은  대로가 아닐까 싶다.

 

 

 

 

 

 

 

 

 

 

 

 

 

 

 

 

 

舊名은  영월군 하동면 > 김삿갓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