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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귀거래사(歸去來辭) - 김시우

낙동강사랑 2015. 11. 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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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歸去來辭), 도연명(陶淵明) : 중국 진(晉) 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사부(辭賦),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것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동경하는 내용,

중국 송대(宋代)의 대표적인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년)은 동진(東晉) 말기에 태어나 남조(南朝)의 송(宋)나라 초기에 살았던 詩人이다.

이름은 잠(潛)이며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라고하며. 난정서(蘭亭書)를 쓴 왕희지(王羲之)와 동(同) 시대를 살았지만 왕희지(王羲之) 보다 44살 아래로 그의 위대함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도연명은 29세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전원생활(田園生活)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관직(官職)을 사임하고 낙향(落鄕)하여 두 번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도연명(陶淵明)을 두고 중국 문학사(文學史)를 통털어 가장 조화롭고 원만하고 유순한 삶을 살다 간 詩人이라는 점에 이론을 제기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큰 벼슬을 지낸적도 없고, 그렇다고 뛰어난 업적이나 권력을 잡은 적도 없었으며, 평생 지은 일백 편이 좀 넘는 詩와 열 한 편의 산문(散文)이 남아 있는 정도지만 오늘날까지도 전원시(田園詩)의 초석(礎石)을 놓은 위대한 詩人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의 생활 역시 그의 詩처럼 검소하고 단순 담백해서 화려하고 복잡하고 빠른 걸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자신을 뒤돌아보는 여유를 느끼게 하는 시인으로, 존경심을 넘어 외경심(畏敬心)까지 일게 하는 대 시인(大 詩人)이다.

도연명(陶淵明)은 애정관(愛情觀) 또한 모범적인 사람 였다. 당시의 많은 명사(名士)들은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달하는 첩(妾)을 두고 사는 것이 보통였지만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육체적인 사랑도 지나치지 않게 적절하게 절재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렇다고 큰 이상을 품고 학처럼 고고하게 살아가는 금욕주의자(禁慾主義者)같은 삶을 산 건 결코 아니다.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길 줄도 알았으며, 높은 정신적 품성까지 갖춰 그 조화가 잘 어우러진 사람 였었다.

가장 이상적인 남성상(男性象)을 말하자면, 여성(女性)의 관능(官能)과 미적(美的)인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지만, 결코 무례하지 않고 존중 하며, 人生의 멋과 향(香)을 즐기지만 절제 할 줄 알아야 하고, 세속적인 성공과 실패에 대한 욕구와 낙담이 결국에 가서는 다 부질없는 허상(虛象)인 줄도 알며, 그에 초연(初演)하지만, 그렇다고 삶과 욕망을 가벼이하거나 적대시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正義) 할 수 있다.


도연명(陶淵明)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의 詩처럼 지극히 순리적이고 자연적이며 인간의 본성(本性)을 사랑했던 사람 였다. 진정한 자유(自由)를 알아 그것을 만끽하며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다 간, 가슴 따뜻한 자유인(自由人) 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낙향하여 3년 째 되던 해 한창 전원생활에 심취 했을 무렵 원인 모를 불이 나 집과 세간을 다 태워 가족을 데리고 심양 근교 남촌(南村)으로 이사를 했으며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 시인들이 그렇듯 그도 술을 너무 좋아하여 한때는 가세(家勢)가 기울기도 했으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놈의 술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서기 405년 평택현의 지사(知事)자리를 그만두고 낙향하며 지은 詩가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부패하고 타락했던 사회상과 뇌물로 얼룩지고 아부와 아첨을 일삼는 벼슬자리가 그의 생리에 맞을리 없던 그는 【내 어찌 쌀 다섯 말에 허세부리는 미관말직 소인배들에게 허리를 굽힐 수 있으랴】라고 소리치곤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당시 현(縣) 지사(知事) 한 달 봉급이 쌀 다섯 말 정도 였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詩【귀거래사(歸去來辭)】에는 자유로운 삶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짙게 녹아 있다. 【귀거래사(歸去來辭)】는 한시의 초기 작품이라 후기에 생긴 한시(漢詩) 형식(形式)과는 차이가 있다.

도연명(陶淵明)을 두고 언뜻 생각하면 은둔자(隱遁者)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는 결코 세상을 도피한 은둔자는 아니었다. 그가 정녕 피하고자 했던 것은 현실(現實)의 답답한 정치(政治)와 혼탁한 사회 였지. 인생 자체의 도피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관직을 그만 둔 후에도 여러 번 조정의 관직(官職) 권유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땀 흘려 부지런히 농사 짓고 자연과 벗하며, 천하의 근본이며 땅의 진정한 주인인 농부로 살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詩는 사언체(四言體) 9수, 오언체(五言體) 115수와 산문 11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은 80여 수에 불과하다. 허나, 따스한 인간미와 고담(古談)의 기풍이 서려 있는 작품들이 다수(多數)로 모나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는 전원적인 삶에서 우러나는 심성(心性)의 산물이다.

그의 시가 오래도록 주목 받고 애송 되는 까닭은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읊조림과 멀리 세속의 티끌을 넘어서서 맑고 깊은 운치를 칭송하는 선경(仙景)의 경지 때문이라고 소동파(蘇東坡)는 칭송 했다.


그는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이나 현실 부정적(否政的)인 사고와 미래 지향적인 사고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가족을 떠나거나 현실적인 삶 자체를 등안시 하고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이상(理想)을 주는 사람들과는 질적(質的)으로 다른, 노동의 고됨과 신성함을 몸으로 느끼며 그것들을 즐기고 또 사랑했으며, 긍정적인 사고와 자연에 대한 합리적인 이치를 폭넓게 구현한 진정한 휴머니스트(Humanist) 였다.

이상(理想)과 현실(現實)이 잘 조화 된 그의 인생관(人生觀)에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선경적(仙境的) 전원시(田園詩)인 【귀거래사(歸去來辭)】가 탄생한 것이라고 본다.

그는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부패와 모순 투성이의 세상을 피해 숨기보다는, 한 걸음 빗겨서서, 맑은 아침 홀로 산책을 하거나 밭 가에 지팡이를 꽂아두고 잡초를 뽑고 곡식을 돌보는, 근본적인 삶을 택해 살았다.

그는 죽는날까지 전원(田園)에서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그가 애정을 쏟아부은 자연(自然)으로 돌아갔다.

도연명(陶淵明)...그의 人生 목적(目的)은 자연(自然)과 인간(人間)의 아름다운 조화(調和)였지, 결코 배반이나 도피는 아니였음을 그의 詩【귀거래사(歸去來辭)】는 일러주고 있다,

【이하 도연명(陶淵明)의 시(時) 기재는 용량이 많으므로 생략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 applejack ~ 입니다





귀거래사(歸去來辭) - 김신우



우 ~ ~ ~ ~ ~ 우 ~ ~~ ~~ ~

하늘 아래 땅이 있고
그 위에 내가 있으니
어디인들 이 내 몸 둘 곳이야 없으리

하루 해가 저문다고 울터이냐
그리도 내가 작더냐
별이 지는 저 산 너머 내 그리 쉬어 가리라

바람아 불어라 이 내 몸을 날려 주려마
하늘아 구름아 내 몸 쉬러 떠나 가련다


간주

해가 지고 달이 뜨고
그 안에 내가 숨 쉬니
어디인들 이 내 몸 갈 곳이야 없으리

작은 것을 사랑하며 살 터이다
친구를 사랑 하리라
말이 없는 저 들녘에 내 님을 그려 보련다

바람아 불어라 이 내 몸을 날려 주려마
하늘아 구름아 내 몸 쉬러 떠나 가련다

바람아 불어라
이 내 몸을 날려 주려마

하늘아 구름아
내 몸 쉬러 떠나 가련다

우 ~ ~ ~ ~ ~ 우 ~ ~ ~ ~~ ~
우~ ~~~







편집, 제작

애 풀 잭












출처 : 5670 아름다운 동행
글쓴이 : 애풀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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