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서원은 낙동강이 산자락을 한 번 휘어감고 흐르는 강마을 하회에서 한 고개 떨어져 있다. 한 시대를 꼿꼿하게 살았던 선비들을 기린 서원(書院)은 어느 곳이나 구구절절 사연이 서려 있지만 병산서원은 안동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역사가 깊을 뿐 아니라 수백년 세월을 버텨온 건축물도 걸작. 서원을 안고 있는 산수 또한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수려하다.
봄빛이 도는 병산과 낙동강은 넉넉하고 평화롭다. 병산서원 가는 길은 아직도 정겨운 옛날 길.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길이다. 확장계획이 있는지 도로변 논밭에 붉은 깃발을 꽂아 측량을 한 흔적이 보이지만 버스 2대가 비켜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활처럼 굽어진 강변을 따라 서원까지는 4㎞ 정도. 빠른 걸음으로 1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유홍준 교수는 이 길이 아름다워 발품을 팔더라도 꼭 걸어간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사진기 하나 달랑 둘러메고 서원을 찾는 답사객들이 많다.
한 걸음에 싱싱한 산바람을 들이 마시고, 다시 한 걸음에 강물을 바라보며 걷는 시골길. 아이들 숨결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슬그머니 소맷귀를 파고든 것에서 성큼 다가온 봄을 느낀다. 앙상한 가지가 남은 강변의 가로수에도 서서히 봄물이 돌고, 우수가 지나면서 풀린 강물은 양반걸음처럼 느릿하게 소리도 없이 흐른다. 그렇게 걷다 보면 가게 하나 없는 고갯길도 적적하지 않다.
강을 따라 휘어진 야트막한 산허리를 끼고 돌아야 병산서원이 나타난다. 서원은 첫눈에도 아름답다. 산비탈에 가지런하게 세워진 건축물은 위엄이 느껴진다. 서원 앞으로 절벽 앞에서 휘어졌던 낙동강이 다시 모래밭을 감고 흐른다.
서원의 정문은 복례문(復禮門).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는 뜻의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따온 말이다. 정문이 잠겨 있어 답사객들은 ‘머슴 뒷간’옆으로 들어간다. 마치 뿔소라나 나사못처럼 구부러진 토담 위에 짚을 얹은 ‘머슴 뒷간’은 하인들의 화장실인 셈. 아이들은 변기 대신 널빤지 2개가 달랑 놓인 재래식 뒷간이 서원보다도 더 신기한 모양이다. 옛날에는 대나무를 묶어 세웠는데 토담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머슴 뒷간은 설치미술 작품처럼 보인다.
병산서원은 고려 때부터 내려오던 풍산 유씨 문중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서애 유성룡이 1572년에 옮겨 지은 것이다. 유성룡은 학봉 김성일과 함께 퇴계의 가장 빼어난 제자 중 하나. 퇴계가 ‘하늘이 내린 인재이니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처럼 그는 영의정에 올랐고, 병법에도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을 끝까지 후원했으며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에는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남기기도 했다. ‘징비록’이란 이름은 ‘시경’의 소비편(小毖篇)에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의 사후 서애의 학문을 기리는 정경세 등 후학들이 사당을 세웠다.
병산서원에 들어서면 만대루가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200명이 앉을 수 있다는 너른 만대루에 오르면 굽이치는 낙동강과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천장은 휘어진 통나무 대들보를 그대로 살려냈다.
만대루 앞에는 너른 마당이 있고, 뒤에 입교당이 서있다. 입교당 뒤에는 유성룡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가지런하다. 건물이 다른 서원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지만 하나같이 위엄이 있다. 화려하지 않고 절제된 간결미가 바로 조선 선비들이 추구하는 유교사상의 표현이라고 한다. 건축미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아름답다. 전문가들은 병산서원이 ‘그냥 아름다운 수준이 아니다’라며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건축학자 김봉렬 교수는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건축가들에게 병산서원은 영원한 텍스트다. 그곳에는 항상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극찬했다. 미술학자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서 ‘병산서원은 인문적·역사적 의의 말고 미술사적으로 말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한국 건축사의 백미다. 그것은 건축 그 자체로도 최고이고, 자연환경과 어울림에서도 최고이며, 생생하게 보존되고 있는 유물의 건강상태에서도 최고이고, 거기에 따르는 진입로의 아름다움에서도 최고다’라고 썼다.
입교당에 올라 앉으니 만대루의 누각 사이로 강변이 보이는 풍광이 만대루에서 본 것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 20년 넘게 서원을 지켜왔다는 서애의 후손은 꽃봉오리를 틔우는 3월 하순부터는 풍광이 더 아름답다고 귀띔했다. 만월이 휘영청 비추는 보름밤과 녹음에 덮인 여름날의 서원 운치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전사청에 용틀임하듯 가지를 뻗치고 있는 수령 200~300년의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는 늦여름과 가을녘의 고졸한 풍광에 반한 방문객도 많다. 병산서원에 반한 사학자, 건축학자, 사진작가, 화가 등의 발길로 서원의 문턱이 닳는다.
만대루에 앉아 봄햇살로 눈부시게 빛나는 서원 앞의 드넓은 모래밭을 내려다본다. 카운트다운만 남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한 치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북한 핵문제, 오를대로 오른 기름값과 먹구름이 낀 경제, 황당한 대구 지하철 참사…. ‘징비’의 뜻이 새삼스런 시국. 봄바람처럼 훈훈한 소식은 언제나 들을 수 있을지.
▲여행길잡이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빠진다. 예천으로 가는 국도 34호선을 타고 달리다보면 오른쪽에 하회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916번 지방도 풍천 방향으로 5㎞쯤 달리면 하회마을로 가는 진입로가 있다. 효부리에서 직진하면 하회마을. 좌회전해서 비포장길로 4.2㎞쯤 가면 병산서원이다. 병산서원 앞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지만 주말이면 진입로가 좁아 차가 밀린다.
병산서원 곁에 민박집 3곳이 있다. 강변민박(054-853-9796), 병산민박(853-2589), 하회민박(853-3786)에서 묵을 수 있다. 안동댐 입구의 ‘까치구멍집’(821-1056)과 ‘안동 민속음식의 집 ’(821-2944)의 헛제삿밥이 유명하다.
안동 민속음식의 집은 조계행 할머니가 1978년 안동헛제삿밥을 처음으로 메뉴에 넣어 상품화시킨 곳이고 까치구멍집은 그 다음해 안동헛제삿밥 전문 음식점으로 문을 열었다. 헛제삿밥은 재래식 간장과 깨소금, 참기름 외에는 파, 마늘, 고추 등의 자극적인 양념을 넣지 않아 구수하고 담백하다.
/안동/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3년 02월 26일 16:25:50

| ||||||||||||||||||||
<병산서원 전체 구조도>
| ||||||||||||||||||||
땅의 기운이 쌓일 틈이 없이 계속 밀려내려가므로 이런 터에서는 재물이 쌓일 틈이 없어 살림집의 입지로는 부적합하다고 합니다.
안성 맞춤인 터가 되는것이지요. 인적이 드물어 학문수양에 방해가 없으며 뛰어난 경관을 앞에 하여 꽉짜인 서원의 규율과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수 있는 숨구멍이 트여있는 그런 곳이기에 서원의 터로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
| ||||||||||
■ 만대루의 건축미
|
책에서 봤는데 건축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하네요.
출처 : http://hahoe2.andong.com/(병산서원 홈페이지

'전통한옥들&봉화의 亭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주종택. (0) | 2006.09.19 |
---|---|
[스크랩] 물소리 바람소리 (0) | 2006.04.20 |
[스크랩] 영천 / 만취당...남자의 일생은? (0) | 2006.01.22 |
[스크랩] 무안 박씨 무의공파 종택. (0) | 2005.09.12 |
[스크랩] 집주변 꾸미기. (0) | 2005.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