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
立春/ 이 해인 수녀님
낙동강사랑
2013. 2. 5. 05:02
입춘(立春) / 이해인 수녀
꽃술이 떨리는
매화의 향기 속에
어서 일어나세요. 봄
들새들이
아직은 조심스레 지저귀는
나의 정원에도
바람 속에
살짝 웃음을 키우는
나의 마음에도
어서 들어오세요. 봄
살아 있는 것들
다시 사랑하라 외치며
즐겁게 달려오세요. 봄
오늘 하루의 길 위에서
제가 더러는 오해를 받고
가장 믿었던 사람들로 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쓸쓸함에
눈물 흘리게 되더라도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길을 가는
인내로운 여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제게 맡겨진 시간의 옷감들을
자투리까지도 아껴쓰는 알뜰한 재단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슬기를 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 밖에는 없는 것 처럼 투신하는
아름다운 열정이
제 안에 항상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제가 다른 이에 대한 말을 할때는
사랑의 거울 앞에 저를 다시 비추어 보게 하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하느라
갈 길을 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오늘을 묶어 두지 않게 하소서
몹시 바쁠때 일 수록 잠깐이라도 비켜서서
하늘을 보게 하시고
고독의 층계를 높이 올라 해면이 더욱 자유롭고 풍요로운
흰옷의 구도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극히 조그만 것이라도 다 기억하되
제가 남에게 베푼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것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건망증을 허락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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