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산산행(1052m)(강원도 영월)
산행코스
김삿갓묘역 ㅡ 처녀봉 ㅡ 총각봉(전망대 )ㅡ마대산(1052m) ㅡ 산불감시초소ㅡ 김삿갓묘역 원점회기)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산행을 했지만 등로가 뚜렷하지 못해 참 말이 많은 산행이다.
떠거운 날씨에 조금 오르락내리락 하니 아주힘던 산행이였다.
웅부 산행 대장은 발걸음이 빠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긴 코스를 하나 더 잡은 것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혼선이 와서 알바를 몇 번씩해야
했고 마대산의 모든 지도엔 이 코스가 안내되어 있었으니 답사를 하지 않고서는
다른 누가 여길 탐사하더라도 똑 같은 실수를 할 개연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 야유회를 반납하고 산행에 동참한 사무국장이나
산행을 포기하고 음식을 만들어 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산과 물 속에서 즐거움을 느낀 하루였기에 감사드립니다.
난고 김삿갓 유적지
난고 김삿갓
선생은 안동김씨의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의 후예로 조는 선천부사 익순이고 부 안근과 모 함평이씨 사이의 이남이다. 순조 7년 정묘(1807년) 3월 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출생하였고 휘(諱)는 병연 자는 성심 호는 난고(蘭皐)이다. 순조 12년 임신(1812)선생 육세때 조부 익순이 홍경래란에 관련되어 3월 9일 복주(覆誅)되자 연루(連累)를 피하여 황해도 곡산에서 숨어 자랐다. (익순은 고종 정유년에 신원(伸寃)되고 순종 무신에 복작(復爵)되다) 그후 익순에 대한 문죄는 본인에 국한하기로한 조정 결정이 알려져서 선생은 모친과 함께 곡산을 떠나 광주,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 삼옥에 정착하였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때 영월도호부 동헌 백일장에서 조부를 지탄한 죄책으로 번민끝에 궁벽(窮僻)한 산협(山峽)인 이곳 어둔으로 이주하였다. 선생은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나섰으며 김삿갓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선생은 57세로 운명할 때까지 전국을 두루 유랑하였으며 인간사 모든 것을 시제로 락운성시(落韻成詩)하였다. 또한 선생의 과시는 후세 과거 지망자들의 교범으로 쓰여졌을 뿐더러 특히 평민들의 생활상을 시로 읊어 빛나는 서민문학을 남기었다. 철종 14년 계해(1863) 3월 29일 전라도 동복에서 작고한 것을 3년후 둘째 아들 익균이 현재의 묘소로 이장하였다. 1982년 10월 17일 세상에서 잊혀졌던 선생의 묘소를 박영국은 김영배, 이상기등의 증언으로 이곳에서 찾아 내었다.
※ 자료 『김삿갓의 유산』중 시선 난고선생사적 기문 -영월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