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월 12일 15시정각
서울 남서울 터미널역 근처 전자 센터 건물 예식장
그러니까 오늘의 혼주는 나와 종방간 이다( 3촌 작은 아버지 아들 ) .생일이 나는5월 4촌은 9월이다. 그래서 내가 형이지.
어려서 같은 동래서 자라고 초등학교도 동창이지 나는 초등학교 졸업하는해에 대구로 가족이 이사를 나오고 동생은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도 조금 늦게 했다 . 그리고 결혼하고 재수씨의 부추김도 있지만 그 동생둘이 이미 부산으로 나가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고 해서
시골생활이 그렇찮은가 어렵기도하지만 자녀들 교육문제도있고 경제적으로 열악하던 70년대초 부푼 꿈을 안고 부산으로 내려 갔다. 시골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부산내려가서 조그만 자영업을 꽤 재미나게 했단다. 나는 군대생활로 전후방 다니며 그때만 해도 장교는 직책을 맡으면 좀처럼 휴가나 여가를 얻지못했다.
그래서 동생집을 한번도 가지 못했다. 부산내려간지 5년 여 만인가 갑자기 돌아 가셨다. 설하에 4남매(딸2,아들 2)를 남겨 두고 .........
그러니 졸지에 재수씨는 아주 어려움을 겪었다 어린것들을 대리고 친정의 오빠들이있는 서울로 또 생활 터전을 옮겼다.그런 새월이 흘러 이제아들이
혼사를 한다는 연락이왔다. 그동안 수삼년 연락도없었다 .어른들 돌아가실때 경황없이 이야기도 못나누고 몇번은 봤지만 보기만해도 살기어려움이 눈에 보였다.
그런 재수씨가 며누리를 본다니 얼마나 반갑고도 죄서러운지 ..........
그래 어떻게 지냈느냐고 어떻게 살으셨느냐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는 4자매가 똘똘뭉처 동대문 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는데 이제는 자리가 잡히고 살기가 많이 좋아졌단다. 한놈은 일본가서
디자인 공부까지 하고왔단다. 이런 소식을 더러니 얼마나 더 반갑고 기특하게 생각이 되던지 눈물이 핑 돌더라 .
인고의 세월을 용케도 버티어온 재수씨 감사하고 존경함니다.
꼭 참석 할려고 밤새 ㅡ뜬눈으로 밤을 새고 아침에 나오니 눈이 얼마나 쌓였던지................
그래서 차에 채인도 치고 사륜으로기아를 넣고 아내와 여정을 떠난다.
이게 왠일 !
집앞 내리막길 을 내려 서는대 미끄러진다 손썰사이도 없이 옆 밭둑아레로 차가 내려안잤다. 약 1미터는 족히되는 언덕 아래로 .....
다행이 다친데는 없다 . 그리고 차도 시동은 걸린다. 그데로 두고 걷기로했다 큰길 까지 여기가 이렇게 미끄러운데
면소재지에 영업용 택시한데있는데 연락이안된다. 걸어서라도 꼭 가야 한다. 오늘 만큼은 ......
큰길 까지나가는데는 6키로나 된다.시오리다. 단화를 신고 정장을 하고 걸어니 발가락도 아푸다.
오후3시 시간도 쪽긴다 땀이 흐른다.
비상 수단을 섰다 . 우체국 집배원 하는 젊은친구가 평소에 잘지내고있다 .어렵게 부탁을 하니 본인도 길이 빙판이니 나오기 깨름직 하지 그러나 국도는 괜 찮으니 나와주기를 간곡히 무리하게 부탁했다. 나와주어서 그차를 타고 영주 터미날에가니 12시 15분 발 동서울 행이있어 타고같다 동서울에 내려 지하철타고 지하철 또타고
얘식장에 간신히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니 막 예식 마치고 가족 사진 찍는다.
한자리 같이했다. 두리번 누가 왔나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리위에(행열한자위분 ) 어른 들은 다 저세상을 떠났고 나의 행열의 사람이 어른이 되었네 그중에서도 내위의 형님이나 누님들은 고령에 건강도 안좋고 하니 모두 안나왔다, 페백 자리에서 졸지에 내가 제일 큰어른이 되어있엇다.언제 저자리 앉아 정종한잔 먹나 싶드니만 금방이네요.
페백마치고 부페식당 혼주석 VIP 방에 갔다.4촌동생들 그리고 조카들 모두모여 오랫만에 한자리했다. 부산에서, 고향 경남 거창에서 모두 멀리서 온사람 들이다.
그래도 이놈들은 가는 차시간을 넉넉히 잡아 앉아있는데 오히려 서울등 가까이있는놈들이 먼저 뿔뿔이 나간다.
예식장 문화 예사롭게 생각 했는데 오늘 같은 날은 너무 썰렁했다. 가슴이 메인다.
한마당에 열촌난다고 했던가 그런 열 촌은 없고 겨우 육촌 이내만이 모였는데도 낯선 사람이 많고 서먹한 분위기였으니
이것은 오늘날 산업사회를 살아가면 서 직장의 다양성과 교통의 발달로 여러곳에 흐터져 살다보니 자주 볼시간들이 없어니 자연 스런 형상이리라.
그래도 우리 어른들이 일년에 한두번씩이라도 만남의 자리를 만더러서 형제 자매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여 살아가는 동안 정을 나누고 서로 의지가되고 울이되도록
엮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몇번 내가 시도를 해 봤으나 여름 휴가철에도 다들 시간도 틀리고 하는 업종이 틀리니 참 어렵 더구나.
올 여름에는 각집에 대표 한두사람이라도 모이도록 주선 해 봐야겠다.
모쪼록 오늘 결혼한 새가정 조카님 ,질부님 행복한 가정 꾸리시고 홀 어머니께 효도 하고 훌륭한 자녀 낳아 멋진 인생 살아 가세요.
재수씨!
이제 고생끝 행복만 있음니다 . 자녀들로 부터 이제는 공경과 효도 받고
사랑 받아야할 때임니다.
건강하시고 웃음 만 있는 남은 여생 즐겁게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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